생활의 경제

가계부채·주거비 부담에 소비 위축… 통계와 다른 서민 체감경제

asitis1 2025. 12. 21. 11:18

숫자는 회복이라는데, 왜 지갑은 더 가벼울까
최근 발표되는 경제지표를 보면 물가 안정, 성장률 반등이라는 표현이 반복됩니다. 정부는 2024년 GDP 성장률 2.4%를 예상하며 경기 회복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주변을 둘러보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경기가 좋아진다는데 왜 우리 집 생활은 더 팍팍해질까?" 이런 의문을 갖는 분들이 많습니다.

2024년 12월 전 금융권 가계대출은 2조 원 증가했고,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24년 1~11월 소매판매액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2.1% 감소하며 2003년 이후 21년 만에 최대 감소폭을 기록했습니다. 거시경제 지표와 서민들이 느끼는 실제 경제 상황 사이의 괴리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습니다.


1. 가계부채, 매년 0.4%씩 소비를 갉아먹는 만성질환
1-1.세계 최고 수준의 부채 비율
2024년 1분기 기준 한국의 가계신용 잔액은 1,883조 원에 달하며, 2013년 이후 11년 만에 2배로 증가했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입니다. 2025년 1분기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89.5%로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국제 비교를 해보면 한국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은 72.8%, 일본은 64.1%, 유로지역은 54.1%인 것과 비교하면 한국은 월등히 높은 수준입니다. 전문가들이 경고하는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의 데드라인은 80%인데, 한국은 이를 훨씬 초과하고 있습니다.

1-2. 구조적 소비 제약의 악순환
한국은행의 분석 결과가 충격적입니다. 가계부채 누증이 없었다면 2024년 민간소비가 현재보다 4.9~5.4% 더 높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과도하게 쌓인 가계부채가 2013년부터 매년 민간소비 증가율을 0.40~0.44% 포인트씩 낮췄다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일시적인 현상이 아닙니다. 소득의 상당 부분이 원금과 이자를 갚는 데 쓰이면서, 실제 소비로 이어져야 할 돈이 금융권으로 흡수되고 있습니다. 최근 10년간 한국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상승 폭은 노르웨이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았습니다.

1-3. 변동금리 중심 구조의 위험성
2024년 1분기 현재 전체 가계부채 대비 주택담보대출 비중은 57.2%로 과반을 넘어섰으며, 변동금리 비중이 높아 금리 변동에 취약한 상황입니다. 리파이낸싱을 앞둔 가구의 경우 대출한도 축소 등으로 원금상환 부담이 커지면서 소비가 더욱 위축될 우려가 있습니다.

 

2. 주거비 폭등, 소비 위축의 직격탄
2-1. 서울 집값, 13.9년치 연봉 모아야
2023년 기준 서울의 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은 13.9배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13.9년 동안 급여를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집 한 채를 살 수 있다는 의미로, 런던이나 뉴욕보다 주택 구입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2-2. 전세의 월세화, 청년층 직격탄
2025년 1~9월 기준 수도권 아파트 월세 상승률은 6.27%로 집계되었으며, 서울은 7.25% 상승했습니다. 2024년 1분기 전국 오피스텔 전월세전환율은 처음으로 6%대를 넘어섰습니다.

2024년 기준 서울 아파트 월세 평균은 102만 원을 넘어섰으며, 용산구는 평균 207만 원을 기록했습니다. 전세사기 여파와 고금리로 인해 세입자들은 전세보다 비싼 월세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국토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취업한 청년 1인 가구의 평균 주거비는 48만 6천 원으로, 평균 근로소득 333만 5천 원 대비 16.5%를 차지합니다. 더 심각한 것은 청년층 3 가구 중 1 가구가 월급의 20% 이상을 주거비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2-3. 부의 효과는 제한적
한국의 주택 관련 부의 효과는 0.02%로, 주요국(0.03~0.23%)에 비해 낮은 수준입니다. 집값이 올라도 이를 현금화해 쓸 수 있는 수단이 부족해 가난한 집주인(하우스 푸어) 현상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비주택 부동산에 투자된 대출은 공실률 증가로 인한 수익성 악화로 오히려 가계의 현금흐름을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3: 21년 만에 최악의 소비 위축
3-1. 3년 연속 소매판매 마이너스
2024년 소매판매액지수는 전년 대비 2.2% 감소하며, 승용차 등 내구재(-3.1%), 의복 등 준내구재(-3.7%), 음식료품 등 비내구재(-1.4%)에서 모두 감소했습니다.

1995년 이후 소매판매액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IMF 외환위기(1998년), 카드 대란(2003년), 코로나19(2020년) 등 이번을 제외하면 세 차례뿐입니다. 당시에는 한 해 역성장 후 바로 회복되었지만, 3년째 소비가 뒷걸음질 치는 것은 유례없는 일입니다.

3-2. 소비 패턴의 변화: 필수재 80% 생활
소비자들은 외식과 문화생활을 줄이고 식료품이나 병원비, 공과금 등 필수재 지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의류, 전자제품, 가구 등 비필수 항목의 지출은 크게 감소했습니다. 이러한 소비 패턴은 2008년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당시와 유사하게 바깥 활동에 들어가는 외출형 소비는 줄이고, 집에서 사용할 목적의 재택형 소비는 늘리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3-3. 마이너스통장 풍선효과
정부의 스트레스 DSR 제도 도입으로 주택담보대출 규제가 강화되자, 마이너스통장 의존도가 급증했습니다. 고금리 상황에서 생활비와 의료비를 마통으로 메우는 서민들이 늘어나면서 DSR이 악화되고 소비가 영구적으로 위축되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4. 통계와 체감의 괴리, 왜 발생하나
4-1. 상위 20% 소비가 평균을 끌어올린다
공식 통계는 전체 평균을 나타내지만, 고소득층의 소비 회복이 평균을 왜곡시키고 있습니다. 중하위 소득계층의 소비는 여전히 침체 상태이지만, 상위층의 명품 소비와 고가 서비스 이용이 증가하면서 평균 소비가 선방하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가 발생합니다.

4-2. 체감 물가는 공식 CPI의 두 배
정부가 발표하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24년 2.3%로 안정세를 보이지만, 서민들이 자주 구매하는 식료품과 외식비, 월세 등 생활물가 상승률은 5% 수준에 달합니다. 2021년부터 2024년 5월까지 필수재 중심의 생활물가 누적 상승률은 19.1%로, 소비자물가 상승률 15.9%보다 3.2% 포인트 높습니다.

4-3. 자산가치 상승 vs 월납부액 증가
통계에는 집값 상승으로 인한 자산가치 증가가 반영되지만, 실제로 서민들이 매달 납부해야 하는 월세나 원리금 부담은 반영되지 않습니다. 순자산은 4.7억 원 증가했지만, 평균 부채는 9,534만 원으로 7.6% 증가하며 가처분소득을 잠식하고 있습니다.

 

결론: 구조개혁 없이는 체감경제 회복 어렵다
1. 심근경색 아닌 동맥경화
한국은행은 가계부채 문제를 심근경색 같은 급성질환보다 당뇨·고지혈증 같은 만성질환에 비유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위기를 유발하기보다 소비를 서서히 위축시키며 경제의 동맥경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2. 통화정책만으로는 한계
전문가들은 물가수준, 부동산 시장 양극화, 가계부채 등의 문제는 구조적 성격이 커서 통화정책만으로 대응하기 어렵다고 지적합니다. 공급 여력 확충, 유통구조 개선, 규제와 진입장벽 완화를 통한 기업 간 경쟁 촉진 등 근본적인 구조개혁이 필요합니다.

3. 2025년 전망과 정책 방향
한국경제연구원은 2025년 경제성장률이 1.7%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환율 불확실성과 내수 부진에 더해 생활물가·주거비 부담으로 인한 소비 위축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정부는 2025년 생활물가 안정과 서민 생계비 부담 완화를 위해 11조 6천억 원을 지원하고, DSR 제도 개선 및 고정금리대출 비중 확대 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긴 호흡으로 일관된 정책을 지속해야만 가계부채 관리, 주거비 안정, 필수지출 완화가 이루어지고, 그래야 비로소 통계가 말하는 회복과 국민이 느끼는 현실의 간극을 좁힐 수 있을 것입니다.

성장률이 2% 수준을 유지하더라도 가계부채 누증으로 체감 소비는 1% 안팎에 머물 가능성이 높습니다.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생활의 여유입니다. 소득은 늘어도 고정지출이 먼저 가져가고, 경기는 회복돼도 체감은 따라오지 않는 지금의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서민 경제의 겨울은 더 길어질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