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편의 역설, 중년이 먼저 밀려난다
법정 정년은 60세로 보장되지만, 실제 퇴직 연령은 평균 49.3세에 불과합니다. 정부는 노동시장 격차 해소를 위해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 명문화와 초기업 단위 교섭 활성화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시장 개편 논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현장에서는 40대 중년층의 조기퇴직이 오히려 가속화되는 역설적 상황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통계청 2024년 고용동향 자료에 따르면 40대 취업자는 2024년 2월 6만 2,000명, 3월 7만 9,000명, 12월 9만 7,000명이 각각 감소하며 연속 감소세를 보였습니다. 2024년 일자리행정통계에서도 40대 일자리가 전년보다 17만 개 줄어 2년 연속 감소했습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2022년 보고서는 정년 60세 의무화 이후 조기 퇴직자가 급증했다고 밝혔습니다. 2013년 32만 3,000명이었던 명예퇴직이나 권고사직, 정리해고를 이유로 일자리에서 이탈한 조기 퇴직자는 2021년 63만 9,000명으로 97.8%나 급증했으며, 이는 연평균 약 51만 명 수준의 조기 퇴직이 발생했음을 의미합니다. 2025년 현재 정년 65세 연장 논의가 활발하지만, 과거의 전철을 밟을 우려가 큰 상황입니다.
1: 법정 정년과 실제 퇴직 연령의 간극
1-1. 49.3세, 중년의 평균 퇴직 나이
미래에셋투자와 연금센터가 2022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55~64세 연령층의 주된 일자리 평균 퇴직 연령은 49.3세이며, 평균 근속기간은 12.8년입니다. 법정 정년 60세보다 10년 이상 빠른 나이에 회사를 떠나는 것입니다. 여성의 경우 47.4세로 더욱 낮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정년퇴직자가 전체의 9.6%에 불과하다는 사실입니다. 반면 권고사직·명예퇴직·정리해고(15.6%), 사업부진·조업중단(16.0%), 직장 휴·폐업(9.7%) 등 비자발적 조기퇴직 비중이 41.3%를 차지했습니다. 최근 7년간 정년퇴직 비중은 낮아지고 비자발적 조기퇴직 비중은 높아져, 생각보다 이른 퇴직에 대비할 필요성이 커졌습니다.
1-2. 40대 취업자 감소의 구조적 원인
2024년 고용동향을 보면 40대의 고용 상황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유독 어렵습니다. 통계청 관계자는 "40대는 인구 감소 폭이 상당히 높은 구간으로, 전체적으로 1.8% 정도가 감소하고 있다"며 "정보통신, 전문과학, 보건복지 등 신성장 산업으로의 진입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저조한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60세 이상 취업자는 2024년 2월 29만 7,000명, 3월 23만 3,000명 증가한 반면, 40대는 같은 기간 각각 6만 2,000명, 7만 9,000명 감소했습니다. 고령층은 증가하고 중년층은 감소하는 기형적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2: 정년 연장의 역설과 조기퇴직 급증
2-1. 2016년 정년 60세 의무화 이후의 부작용
2016년 정년 60세 법제화는 고령자 고용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그러나 한국경영자총협회의 2023년 보고서는 이 제도가 의도와 다른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합니다. 2013년 대비 2022년까지 정년퇴직자는 41만 7,000명으로 46.3% 증가했지만, 조기 퇴직자는 56만 9,000명으로 76.2%나 급증했습니다.
평균 퇴직 연령도 2013년 50.0세에서 2021년 49.3세로 오히려 낮아졌습니다. 법으로는 60세까지 일할 수 있도록 보장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50세 이전에 회사를 떠나는 사례가 더욱 늘어난 것입니다.
2-2. 연공급 임금체계가 부른 조기퇴직 압박
이러한 역설이 발생한 주요 원인은 연공형 임금체계입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2년 기준 100인 이상 사업장의 55.2%가 호봉급을 도입하고 있으며, 1,000인 이상 사업장은 67.9%가 호봉급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년 연장을 앞두고 적극적으로 조기 퇴직을 유도하고, 임금피크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했습니다. 실제로 300인 이상 사업체의 임금피크제 도입 비율은 2015년 27.2%에서 2017년 53.0%로 급증했습니다.
L-ESG 평가연구원 김성희 원장은 "법적 정년이 60세로 늘었지만 주된 일자리 평균 퇴직 연령은 40대 후반인 상황"이라며 "65세로 법적 정년을 연장해도 법적 강행규정이 함께 도입되지 않으면 중소기업은 근로자들에 대한 조기퇴직 압력이 커서 지금처럼 실제 퇴직 연령이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에 그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3: 2025년 정년 연장 논의와 우려
3-1. 여야의 정년 65세 연장 추진
2025년 현재 정년 65세 연장 논의가 국회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2024년 11월 3일 더불어민주당 정년연장특별위원회가 첫 본회의를 열고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단계적 연장하는 방안의 연내 입법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힘도 2024년 11월 5일 65세까지 근로 기간을 연장하자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
가장 유력한 법안은 2027년부터 단계적으로 정년을 63세로 올리고 2033년까지 65세로 연장하는 방안입니다. 조경태 국민의힘 격차해소특별위원장은 연금 수령 연령에 따라 단계적으로 연장하자는 의견이 모였다고 밝혔습니다.
3-2. 과거의 실패를 반복할 우려
그러나 경영계는 강하게 반대하고 있습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2024년 10월 입장문을 통해 "현행 만 60세 정년제도조차 2017년 전면 시행 이후 신규채용 위축, 조기퇴직 확산, 인사적체 심화 등 부정적 영향만 키웠다"며 "임금 연공성과 고용 경직성을 해소하지 못한 상태에서 또다시 법정 정년을 연장한다면 동일한 부작용이 반복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경총 임영태 고용사회정책본부장은 "2013년 정년 60세 의무화 당시에도 임금체계 개편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현장에서는 실질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이번 논의에서는 임금체계 개편의 실효성 확보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4: 노동시장 개편, 중년에게는 위기
4-1. 정부의 노동시장 격차 해소 정책
고용노동부는 현재 노동시장 내 구조화된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개정 노조법 2·3조가 현장에서 잘 구현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마련 중이며,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명문화하고 초기업 단위 교섭을 활성화할 계획입니다. 또한 '일터 권리보장 기본법' 제정을 추진하여 모든 일하는 사람의 권익을 보호하겠다고 밝혔습니다.
2025년 8월 기준 시간제를 제외한 비정규직의 상대적 임금 수준은 78%로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정부는 이를 노동시장 격차 해소 정책의 성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4-2. 중년층은 개편의 사각지대
그러나 이러한 노동시장 개편 논의에서 40~50대 중년층은 오히려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청년층과 비정규직, 고령층에 대한 보호 정책은 강화되지만, 정작 가계 경제의 핵심인 중년층의 고용 안정 대책은 부족한 상황입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24년 12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1~10월 평균 취업자 증가 폭은 18.4만 명으로 2023년 같은 기간 33.6만 명에서 크게 줄었습니다. 2025년에는 취업자가 전년 대비 약 12만 명 증가하는 데 그쳐 증가폭 둔화가 예상됩니다.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2024년 34만 명, 2025년 38만 명 감소할 전망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년층의 조기퇴직이 가속화된다면, 가계 경제는 더욱 어려워지고 소비 위축으로 이어져 경기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5: 실질적 고용 보장을 위한 과제
5-1. 임금체계 개편이 최우선
전문가들은 정년 연장보다 임금체계 개편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한국노동연구원 남재량 선임연구위원은 "정년 연장은 노동력 부족이나 고령자 소득 단절의 대책이 될 수 없다"며 "향후 15~20년 새 노동력 부족이 발생할 가능성이 낮고 정년 연장은 오히려 조기 퇴직을 증가시킨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연공급에서 직무급으로의 전환이 핵심 과제로 꼽힙니다. 나이와 근속연수가 아닌 수행하는 직무의 가치와 성과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바꾸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줄이면서도 고령 근로자의 고용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5-2. 재고용 제도의 유연한 활용
일본처럼 법정 정년은 유지하되 재고용 제도를 활성화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습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25년 5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재고용 방식은 고령자와 청년 모두의 고용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고령자 계속고용장려금은 정년을 경과한 고령자를 계속 고용하는 중소·중견기업에 분기당 90만 원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제도로, 60~62세 고령자 총고용이 평균 1.57명 증가하는 등 유의미한 효과가 있었습니다. 2022년부터 도입된 고령자 고용지원금도 60세 이상 고령자 고용 증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되었습니다.
5-3. 중년 재취업 지원 강화
중년층의 조기퇴직이 불가피하다면, 재취업을 위한 실질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디지털 전환 시대에 맞는 직무 전환 교육, 경력 기반 일자리 매칭 강화, 창업 및 프리랜서 전환 지원 등이 요구됩니다.
2024년 12월 고용행정 통계에 따르면, 12월 중 구직급여 신규신청자는 10만 1,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8,000명(9.0%) 증가했습니다. 구직급여 지급자는 53만 1,000명으로 1만 9,000명(3.6%) 증가했습니다. 40대를 포함한 중장년층의 실업급여 신청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실질적인 재취업 지원 정책이 시급합니다.
결론: 모든 세대가 함께 일하는 노동시장을 향하여
노동시장 개편이 시작되고 있지만, 중년 조기퇴직은 오히려 빨라지는 역설적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법정 정년은 60세지만 실제 퇴직 연령은 49.3세에 불과하고, 2025년 현재 65세 정년 연장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과거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도 큽니다.
정년 연장만으로는 중년 근로자의 고용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연공급 임금체계를 직무급으로 전환하고, 고령 근로자의 생산성을 높이며, 재고용 제도를 활성화하는 등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합니다. 또한 법적 강행규정을 함께 도입하여 중소기업에서도 실제로 정년이 보장되도록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중년층을 노동시장 개편의 사각지대로 방치하지 않는 것입니다. 청년, 비정규직, 고령층에 대한 보호 정책과 함께 중년층의 고용 안정 대책이 균형있게 추진되어야 합니다. 주택 대출, 자녀 교육비, 부모 부양 등 지출이 집중되는 시기에 소득이 끊기면 가계 경제가 붕괴되고 이는 곧 내수 침체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2025년 한국 노동시장은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단순히 정년 연령을 숫자로 늘리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모든 세대가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진짜 노동시장 개편입니다. 조기퇴직이 더 빨라지는 역설을 끝내고, 청년·중년·고령층이 함께 일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노동시장을 만드는 것이 우리 앞에 놓인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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